1. 구역 청소
예전 나이트 근무를 할 때 동이 틀 무렵(새벽 5시 정도)이 되면 다들 소독약이 묻은 수건으로 투약구역, 환자 침상, 서랍 할 것 없이 박박 닦았던 기억이 있다. 귀찮아서 대충 닦을 순 있어도 어지간히 바쁘지 않은 이상 필수로 했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걸 알면서도 '이런 것도 간호사가 해야 하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고, 그렇게 신경을 써도 하루가 멀다 하고 환자에게서 MDRO가 검출되었던 터라 '이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었다.
여기선 안 한다. 나이트로 오리엔테이션 받는 2주 동안 누군가 소독포로 구역청소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마 청소는 간호사의 일이 아닌 house keeping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 같은데, house keeping들도 따로 컴퓨터 책상이나 환자 침대를 닦진 않는다(...). 그나마 한번 싹 대청소 하는 건 환자가 전동 가거나 퇴원하여 베드가 아예 빌 때 한 번인데, 그때 투약준비 구역이나 모니터, 의자를 닦는지는 목격한 바가 없어서 확실히 알 수 없다.
2. 의료폐기물
한국에선 의료폐기물 상자(흰색에 주황봉투가 안에 든)에 일반 의료폐기물, 손상성 폐기물 플라스틱 상자에 니들 같은 날카로운 것을 넣으면서 일했다. 바쁘면 일반폐기물을 아무 데나 던져버렸지만, 그건 청소업무원님들이 수시로 부서를 돌면서 바닥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꽉 찬 폐기물 박스는 새 걸로 교체해 주셨다. 이분들이 하는 일이 꽤 포션이 커서, 파업하거나 결근이라도 하시는 날엔 부서 전체가 비상이었다. 그럼 바닥의 쓰레기 줍기나 의료폐기물 상자를 교체하는 일이 차지간호사의 업무가 되거나 차지에게 혼난 내 업무가 됐었다(아무 데나 버린 내 잘못이지).
다른 병원은 모르겠지만 우리 부서는 의료폐기물이 종이 박스가 아닌 플라스틱 바퀴 달린 키 큰 상자다. 그리고 위험물질임을 알리는 마크가 붙은 주황색 봉투 없이 그냥 평범한 흰 봉투가 들어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을 치우고 하는 일은 house keeping들이 하는데, 하루에 몇 번 정해진 주기만 돌며 그 외엔 신청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 업무 플로우가 손상성 폐기물통에도 똑같이 적용돼서, 손상성폐기물이 꽉 찼는데도 비워주질 않아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3. 투약구역 정리
한국에 있을 땐 투약구역과 컴퓨터 앞이 깔끔하게 정리된 걸 선호하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느꼈다. 정리가 잘 되어있으면 헷갈릴 일이 없고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쓰고 남은 supply들은 제자리에 두고, 투약카트는 알코올 솜으로 한번 닦기라도 하는 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한 번씩은 청소했다. 하지만 물건을 잔뜩 늘어놓고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보통 차지선생님들께 한 소리 듣고 난 뒤 결국 정리하는 게 국룰이었다.
반대로 여기 친구들은 '정리란 걸 모르나...?' 싶을 정도로 책상 앞이 너저분하다. 우리 부서는 투약 준비구역이라는 게 따로 없다고 느낄 정도로 컴퓨터 책상이 협소하고 환자 개인 약서랍 DMD 선반도 너무 좁다. 그런데도 남은 드레싱 물품, 시린지, 잡동사니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약을 준비하기가 더 어렵다. 그나마 정리라고 하면 쓰지도 않은 잡동사니들을 전부 버리거나 모니터 뒤 수납칸에 꽃아 버리는 데, 이것 때문에 이미 나와있는 안 쓴 새 물건을 또 꺼내 쓰는 일이 자주 있다. 물론 미국 간호사들이라고 다 지저분한 건 아니고, 그중 몇몇은 병적으로 투약구역 정리에 집착하는 친구들이 있다. 다만 한국처럼 청소가 안되어있다고 잔소리를 하는 일은 없고, 그 마저도 하나의 업무 스타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인 듯하다. '싫으면 지가 정리하겠지' 하는 마인드가 지배적인 듯.
4. 라인 정리
중환자실 같이 IV 지속주입 약물이 많은 부서에선 IV 라인 정리가 생명이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이걸 못해서 여러 번 혼났었다. 라인 정리는 어느 약물이 어느 port로 들어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쉽게끔 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같은 lumen으로 주입되면 안 되는 약물들이나 말초정맥으로 주입되면 안 되는 약물들이 들어가고 있는지, 혹은 disconnect 되어있거나 clamping 되어있는지 거를 수도 있다. 하지만 각 인퓨전 펌프와 IV 라인에 무슨 약인지 전부 라벨링을 해놓기 때문에, 그리고 인계 때 한 번 눈과 손으로 따라가며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라인 정리를 철저하게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애초에 잘못된 라인으로 약이 주입되고 있거나 약이 주입되지 않고 있는 걸 파악 못하는 근본 원인은 자기가 확인을 안 해서지 라인 정리가 안 되어있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그 행위가 업무 로딩이라고 생각했고, 혼나면서도 노력은 했지만 어차피 뒷턴 간호사가 확인하면서 내가 정리해 놓은 걸 다 망쳐놓기도 하는 걸 보며 라인 정리를 적극적으로 안 하기 시작했다.
쌓인 게 많아서인가 잡설이 길어졌는데, 결론을 말하면 여기선 라인정리를 잘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부서가 승압제나 기타 고위험 약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굳이 disconnect 해 가면서 라인을 예쁘게 정리하는 사람은 없기도 하다. 다들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런 약이 달려있지 않은 환자에 한해 정리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기는 한데, 대부분 하나마나한 행위에 시간과 칼로리를 쏟지 않는다. 그나마 라인정리보다는 labeling에 더 신경 쓰는 데, 그마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안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냥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하는 식이다. 총평은, 한국간호사들이 미국에 비해 정리정돈이 철저하며, 미국은 개인의 업무 스타일을 훨씬 존중해 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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