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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간호사

미국간호사도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한계점

1.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미국 간호사로 일한다고 힘들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장벽 외에도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신, 혹은 미국 간호사를 준비 중인 독자들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아래 공유할 내용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도 포함되는 이야기이긴 해서... 그 점 참고해서 봐주면 좋겠다.

2. 어쨌거나 하는 일은 똑같다.

 말 그대로 한국 간호사나 미국 간호사가 하는 일이 똑같다. 물론 미국병원은 더 많은 스태프들로 인해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고 간호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국보다 현저히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기에... 기본적인 간호행위 혹은 루틴업무 그 어떤 것에서도 오는 스트레스는 동일하다. 필자는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position change 나 incontinence care 등 쉽게 말해 덩치 큰 아가들을 다루는 일을 한다. 느낀 바 한국과 거의 동일한 프로토콜과 지침을 따르고 있어 그에 따른 피로도는 어쩔 수 없다. 미국 오기 전 어디선가 '미국에선 포지션 체인지도 조무원들이랑 같이 여러 명이서 한다던데?'라고 들었지만 현실은 똑같이 간호사 두 명이서 하고 있다. 미국이라고 저 정도로 인력이 넘쳐나는 건 아니니 참고하자. 뉴욕 내 다른 병원은 다를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간호인력은 부족하기에 다른 곳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3. 서로 업무 경계가 너무 명확해서 책임소재 또한 너무 확실하다.

 다시 말하면 남의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내 일 아니지만 한 번 해주는 상황이 많고 그걸 서로 주고받지만, 여기선 내 일이 아닌 건 환자가 넘어갈지언정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CRRT를 돌리고 있는 환자는 CRRT class를 이수한 간호사만 볼 수 있고 만일 그게 없다면 '난 볼 줄 몰라', 'I don't wanna get in trouble' 하며 한 발 물러선다. 또 아주 간단한 ventilator setting을 바꾸는 일에도 한 시간이 걸리건 두 시간이 걸리건 RT를 기다리지 간호사가 만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하다 오면 이게 답답해 보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소송이 자주 걸리기 때문에 책임소재에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 한국도 병원뿐만 아니라 일할 때 책임소재를 다들 따지지만, 미국만큼 심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sunrise
나이트 근무가 끝나갈 때쯤 보이는 일출.

4. 결국 order를 받아 수행하는 최일선, 최종 말단 수행자 포지션

 간호사의 업무를 다른 의료직군과 구분 지어 놓는 것과 간호사에게 autonomy를 많이 주는 것에 있어서 미국은 세계 1위 지만, 간호사의 모든 행위는 의사 혹은 다른 누군가의 order에 따르는 것이라는 대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내가 가장 크게 체감한 한계점이었다. 이게 의사소통이 잘 될 때는 문제가 없는데 한 번 꼬이게 되면(예를 들면 나에게 지시를 내리는 care team이 둘 이상이라던가, 같은 primary team member들끼리 서로 다른 말을 한다거나) 답이 없고 중간에서 뭐 되기 딱 좋다.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업무 중간에 신환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 바빠서 환자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면? 난 새로 온 환자의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오더대로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업무 특성상 내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 무언가 discrepancy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recommendation'이라는 게 파워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흔히 인계시간 또는 차지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때 'plan'에 대해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사실 회의적인 게, 그게 의사들 플랜이지 간호사 플랜은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 플랜에 기여는 할 수 있을지언정 플랜을 바꾸거나 새로 짤 순 없는 게 어쩔 수 없는 직업적 한계라고 느껴졌다(다른 직업군도 다 똑같겠지만).

5. 태도가 더 개판인 애들이 많다.

 이건 거의 유일한 미국의 단점이라고 본다. 한국의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교육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 눈치를 어느 정도 보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라도 대부분 상식선 안에서 행동하지만, 미국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이고 개인의 자유를 워낙 중시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상식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없다고는 못하겠다). 태업, 무단결근, 지각, 부족한 업무 파악과 같은 일들이 한국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이게 union(노조)이 있는 병원이 좀 심하다고 들었다. 개판을 쳐도 잘리지 않으니 저런 게 횡행한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그래도 우리 병원은 노조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다들 기본은 하는 것 같다. 이런 것에 편견 가지기 싫지만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어떨 땐 저런 상식이하의 행동 때문에 본인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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