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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간호사

미국간호사 - 업무의 차이(투약준비, 수행)

0. 개요

 간호사의 업무 중 가장 자주 발생하며 가장 중요한 업무가 투약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투약'이라는 행위 때문에 간호대학이 4년제로 운영되고 이에 따라 유사 직군과는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닐까? 여기서 일 해보고 느낀 건 투약시스템이 한국과 많이 달라서 전체적인 업무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미국이 한국에 비해 훨씬 투약오류 가능성이 적다고 느꼈으며 투약이라는 간호행위 시 느껴지는 스트레스도 훨씬 덜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전반적인 투약 플로우에 대해 한국과 비교하며 공유해 보겠다.

1. 투약 준비

[1] 전자약장

 전에 일했던 곳에선 비품약이 거대한 나무 장에 담겨있지만 마약, 향정이 아니라면 잠금장치가 없었다. 장에는 주로 기본적인 항생제(Meropenem, Vancomycin), 수액(Plasma Solution, 5% albumin), sedative(Precedex, Propofol, Fentanyl, Ketamine), Inotropes&Pressors(Dobutamine, Dopamine, Vasopressin, Norepinephrine, Epinephrine)와 같은 IV medication들로 채워져 있었으며 각 개수는 5개 미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14 베드 기준). 여기선 'Omnicell'이라는 철제+플라스틱(비가연성) 전자약장을 쓴다. 한국에도 최근엔 전자약장을 사용하는 부서들이 있다고 들었다.

omnicell
옴니셀 사진. 출처: omnicell hompage

 지하철 무인 물품보관소랑 비슷한 시스템이다. 내 지문을 찍고 해당 환자를 선택 후 필요한 약을 검색, 의사 오더와 연동되어 내가 약을 몇 개 빼야 하는지 알려준다. 만약 앰플이나 바이알의 일부만 써야 한다면 'partial dose'라고 경고음과 함께 다시 한번 강조해 준다. 그 뒤엔 해당 약 칸에 초록불이 들어오며 약 위치를 알려준다. 비품약엔 한국 중환자실 약장에 있을 법 한 IV 약들 외에도 대부분의 PO약, SQ약이 같이 있다. 환자에게 주는 대부분의 루틴 약들은 전부 옴니셀에 있고, 약국제조 약 같은 몇 가지만 약국에서 배달해 준다. 정말 오만가지 약들이 다 들어있는데, '이런 게 비품으로 있다고?' 싶었던 건 종류별 백신이었다. 환자 입원 시 미접종 백신이 있으면 바로 꺼내서 줄 수 있게 냉장고에(옴니셀과 연동되어 있다) 보관되어 있었다. 쓰는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비품이 있다는 건 미국이 한국에 비해 전염병 백신 접종여부를 중요하게 따지는 것 아닐까.

[2] DMD

 무엇의 약자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나 대충 환자 개인 약서랍이다. 다른 병원은, 아니 그전에 같은 병원 다른 캠퍼스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환자 방 앞에 지문 인식을 통해서만 열리는 서랍이 있다. 보통 PO약이나 hand delivery medication들이 맨 위칸에 있고 그 밑으론 시린지들과 수액백들이 채워져 있다. 지문 인식을 통해 서랍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약국 직원, 부족한 물품을 채워주는 테크니션, 그리고 간호사 이렇게 세 직종인데 간호사만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누가 약을 빼가도 모를 일이다(그렇게 위험한 약은 DMD에 없지만). 지문으로만 열리게끔 한 게 현재까지는 불편한 점이 더 많이 느껴지고 이득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3] IV 약 mix

 가장 큰 특징은 'needle injury'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 시린지로 수액 백에서 수액을 뺀 뒤 다시 바이알이나 앰플에 넣고 섞는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약물이 premix 되어 나온다. 중환자실에서 자주 쓰는 지속주입약물은 전부 premix고 항생제도 용량에 따라 약국에서 조제해서 올라온다. 그 외 나머지 항생제 vial은 vial2bag 기구를 통해 믹스한다. 한국에도 이게 있긴 한데, 모든 약에 쓰이진 않고 특정 약에 세트로 딸려오는 경우만 사용한다.

 또 하나, 예를 들어 vancomycin 750mg을 믹스해야 하는 데 부서에 비품이 1,000mg 바이알 밖에 없다면? 한국이라면 1,000mg 바이알에 알맞은 양의 용매를 넣고 섞은 뒤 부분용량을 계산해서 일부분만 다시 시린지로 재서 수액백에 믹스했을 것이다. 미국에선 partial dose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약국에서 조제해서 올려준다(!). 아무래도 투약 오류를 줄이기 위한 디테일로 보인다.

vial_2_bag
vial2bag. 항생제를 믹스한 뒤 수액라인 커넥터를 뜯으면 그 상태로 바로 연결이 가능. 출처: Pharmacy Practice News

[4] SQ 약 준비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앰플에서 needle puncture를 통해 약을 준비하는데, 그래도 needle 자체에 safety system이 있어 부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느껴진다. 이 니들은 한국 중환자실에서도 자주 봤던 거라 우리나라도 보편적으로 쓴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injury 방지를 위한 더 나은 기구들이 한국에도 많이 사용되길 바란다.

safety_needle
safety system. 환자에게 주입하고 난 뒤 엄지나 검지로 밀어서 needle을 봉인한다. 출처: tiger medical 홈페이지

2. 투약 수행

 투약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7 rights' 일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땐 5 rights였는데 '정확한 기록, 정확한 교육'이 두 개가 더해져 지금의 7원칙이 되었다. 모든 투약 오류 및 사고는 7 rights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 데서 발생하며, 나 또한 저 원칙을 가끔 지키지 않아 환자 안전 사례 보고서를(다행히 환자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사건은 없었다) 쓸 때도 있었다. 항상 사고가 난 원인에 5 rights를 지키지 않아서라고 보고했고, 시스템 상으로 개선이 필요한 것엔 따로 기재하지 않았었다. 여기 와서 느낀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그 시스템이 투약오류를 줄이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진 시스템 탓을 하기에 한국의 의료환경이 너무 여유 없이 돌아가는 걸 알기에, 후려쳐진 수가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계를 들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넘겨짚었기에, 그저 내 탓으로 모든 걸 돌렸던 건 아닐까...?

[1] 투약 수행 플로우

  • 먼저 환자 팔찌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투약 창에서 'scanned'라고 뜨며 환자 팔찌를 스캔하지 않고 약을 주려면 override 사유를 선택해서 입력해야 한다.
  • 주고자 하는 약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역시 스캔하지 않으면 override 사유를 입력해야 한다. 스캔한 약과 의사 오더상의 용량이 맞지 않을 경우 붉은색으로 ordered dose와 다르다고 강조된다. partial dose일 경우가 보통 그렇다. 혹은 스캔을 아무리 해도 인식이 안되거나 '지금 줄 약이 아닙니다' 하고 알림이 뜰 때가 있다. 내가 정말 약을 잘못 가져와서 이거나 이미 스캔한 경우 이렇다.
  • 항생제 혹은 지속주입 약물의 경우 정해진 속도만큼 펌프를 통해 주기 때문에 펌프의 바코드를 스캔한다. 인퓨전펌프도 전부 전산과 연동되어 있어 자동으로 속도가 계산되어 펌프에 입력된다. 내가 직접 약물 속도를 환산할 필요가 전혀 없다.
  • 펌프와 연동이 안 되어 속도가 자동계산이 안 되었다면 펌프를 수동조작하면 된다.  펌프 자체적으로 'library'가 있는데, 병원에서 쓰는 모든 약물+최근에 나온 신약 까지도 용량별 권장 속도가 저장되어있다고 한다. 내가 주고자 하는 약물을 찾아 용매와 용질의 양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권장 주입속도를 계산해서 주도록 되어있다.
  • 펌프를 스캔했다면 약을 섞을 용매의(생리식염수라던가) 바코드를 스캔한다(premix 약물이라면 이 과정은 생략된다). 0.9% NS 50ml와 D5W 50ml 백이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릴 때가 많은데, 스캔해 보면 알 수 있어 다행이다.
  • 모든 정보가 맞아 확인을 누르면 펌프로 정보가 자동 전송되고 펌프에서 start만 눌러주면 된다.

[2] 약물 조정

 한글로는 정확한 표현이 뭔지 모르겠다. 'Titration'에 관한 이야긴데, 이곳 간호사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전 세계에서 간호사가 가장 많은 'autonomy'를 가진 나라는 미국일 거라고 말한다. 무슨 말이냐면, 여기선 지속주입 약물 용량 변경이 필요할 시, 의사에게 컨펌받지 않고 맘대로 할 수 있다. 병원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간호사가 맘대로(오더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약물 종류는 아래와 같다.

  • 대부분의 Pressors: Norepinephrine(Levophed), Epinephrine, Vasopressin, Phenylephrine(Neo-synephrine)...
  • Sedatives, Opioids: Fentanyl, Dexmedetomidine(Precedex), Propofol(Diprivan), Hydromorphone(Dilaudid)...
  • 혈압 하강제: Nicardipine(Cardene), Labetalol(Trandate), Esmolol(Brevibloc)...
  • 인슐린, 헤파린(한국에서도 이건 간호사가 조작 가능했었다) 

 이외에 수많은 약물들이 원내 프로토콜에 따라 간호사가 타이트레이션 가능하다. 한국에서도 간호사가 자체적으로 용량 조정을 할 때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숙련된 간호사에 한해 이뤄지며(선조치 후보고) 간호사 독자적으로 titration이 가능하다고 오더에 명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철저하게 신뢰를 기반으로(?) 수행된다. 그렇기에 잘못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오더엔 간호사가 의사허락 없이 만지란 말이 없으니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약물 용량을 바꾸고 싶으면 의사에게 메시지나 전화를 해야 하는 데, 그들도 바쁜걸 우리가 아니 가끔 눈치 보일 때도 있고... 가끔은 연락이 안 될 때도 있고 해서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titratable drug들은 보통 오더에 시작용량, 용량 변경 주기, 변경 단위, 권장 미니멈&맥시멈 용량이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어 오더만 보고 따라 하면 된다. 이로 인해 쓸데없는 의사소통이 줄어 간호사도 기타 의료진도 업무부담이 줄어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약 이어도 non-titratable이 있는데, 이건 오더에 'titrate by NP/PA/MD only'라는 식으로 나와있어 헷갈릴 염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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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 - [미국간호사] - 미국간호사 - 업무의 차이(투약 파트 계속)

 

미국간호사 - 업무의 차이(투약 파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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