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벌써 1년
어느덧 이곳 CT+SICU에서 일한 지도 1년이 넘었다. 데이 6개월, 나이트 8개월 째인데 한국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에 비해 환자와 의사소통할 일이 훨씬 많아서, 일하며 느낀 미국 환자들의 특징을 알아볼까 한다. 내용이 앞의 포스팅과 중복일 수도 있지만 블로그를 방문하는 독자분들이 내 모든 글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에(무엇보다도 간단하게 쓸 글이 마땅하지도 않...) 나름 도움 되는 정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1. 기호가 명확
한국에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환자의 의사는 거의(?) 무시한 채 집행한다. 환자의 의사를 묻는 건 시술이나 수술 등 정말 크게 환자 몸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에 한해서이고, 이마저도 환자가 어떻게든 의료진의 말에 따르게끔 열심히 설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선 환자의 의사가 최우선이며 그것이 본인의 건강상태에 반하는 것이어도 환자가 싫다고 잡아떼면 일단 환자 의사를 존중해 준다. 죽고 싶다는 환자의 의사도 '너가죽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여기서만 아니면 돼~'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환자는 의료진이 제안하는 수술이나 시술, 투약을 잘 따르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이 한국에 비해 많다고 느꼈다. 나 같은 경우(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듯) 타이레놀 같은 간단한, 대세에 지장을 미치지 않는 약은 투약할 때 환자가 싫다고 하면 두 번 얘기 안 하고 그냥 투약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식환자의 면역억제제, 저혈압환자의 승압제 등 투약 거부 시 치명적인 위해가 생길 수 있는 약은 환자가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난 보통 설득을 한 번은 더 해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NP나 PA에게 알려 그들이 한번 더 설득해 보도록 한다. 실제로 심장이식을 받았던 환자가 면역억제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약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프로바이더들이 설득한 끝에 어르고 달래서 면역억제제를 먹였던 기억이 있다(그 마저도 꼬박꼬박 먹진 않았다).
2. 위생상태가 불량
한국 환자들에 비해 위생상태가 많이 불량하다. 전반적인 위생관념이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으며 인구나 인종특성도 한몫하는 것 같다. 더 깊게 들어가면 그 내용이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뉴욕주는 차별에 굉장히 민감하다. 직장에서 잘리고 싶진 않다.)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아무튼, 위생상태 때문에 안 그래도 거동이 힘든 중환자에게선 가끔 냄새가 많이 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단 좀 더 비위가 좋아야 일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좀 더 상냥
환자들 특징이라기 보단 전반적인 미국인들 특징 같은데,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더 상냥하다. 대화해 보면 꽤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사에 대한 표현도 더 자주, 확실하게 하는 편이고 personal space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러는지 간호사가 bedside에서 일하려고 하면 보호자들의 경우 '내가 나가있을 까?', '내가 방해하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매우 많다. 감사에 대한 예시로, 퇴원한 환자 중 한 명이 Nurse week때 매일 부서에 와서 도넛을 돌렸던 적도 있었다. 간호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께 감사하다고... 한국 중환자실에 있을 때도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음식을 자주 사 와서 성의표시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는데 미국에선 이런 풍경을 더 자주 보는 느낌이 든다.
4. 엄살이 더 심하고 더 예민함
한국에선 알러지 있는 환자를 찾기 힘들었는데 미국에선 알러지 없는 환자를 찾기가 힘들다. 꽃가루 알러지면 귀여운 수준이고 온갖 약, 물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쓰레기 같은 음식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식습관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알레르기에 취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은 밥이 잘 나오는 편이라 괜찮지만 대부분 미국 병원에선 환자에게 나오는 식사도 쓰레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니 이유라기 보단 '과연 이게 알러지가 맞을까?'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기분이나 몸에 이상반응이 생기면, 내지는 그냥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나 '그 약에 알러지 있어'라고 과장하거나 거짓말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severe하지 않은 약을 꼭 써야 하는 경우 투약을 하는 편인데, 막상 투약 후 기 보고된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환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한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선 기분이 나쁘고 위험한 발언인 걸 알지만, 있는 알러지나 통증도 참거나 둔해서 눈치못채는 한국 환자들에 비하면 훨씬 예민하고 참을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IV를 삽입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통증에 예민한 미국인들 특성을 고려해 난 한번 시도하고 실패하면 더 시도하지 않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더 붙잡고 있어 봤자 나만 더 심적으로 부담되고 환자는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IV도 그렇고 SQ도 그렇고 주사부위를 환자가 결정하는 상황도 있다. '여기는 이래서 싫고 저기는 저래서 싫으니 여기에 시도해 줘' 하는 식으로 말이다.
5. 적응의 동물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런 미국환자들에게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크게 문제사항이 생기진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연차가 오래된 간호사들을 보면 환자를 아이 다루듯 잘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데, 그 의사소통 스킬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이 분야는 역시 경험이 지식만큼 중요한 것 같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미국 환자들이 더 예민하고 본인의 의사를 존중받는다고 해도, 간호사가 생각하기에 꼭 해야 하는 일이나 간호사가 하면 안 되는 일은 환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간호사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고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환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아야한다. 환자를 대하는 게 아기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부모가 주도권이 없으면 그 가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며, 환자와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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