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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간호사

차지

1. 내 인생에 차지는 없을 줄 알았다

 한국에서 일했던 4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차지를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첫 직장이었던 대병 ICU는 4년 차 정도가 되어서야 슬슬 트레이닝시켰고 기간도 한 달 정도로 넉넉했다. 또한 반 강제긴 하지만 차지 프로그램에 동의를 해야 차지를 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난 차지가 하기 싫었는데, 그 이유는 차지 일의 많은 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리소스 널스 같은 게 한국엔 없었기 때문에(지금도 없을 듯) 차지가 기존 차지업무 플러스 오롯이 감염관리나 욕창관리 같은 질지표 관리를 다 해야 했다. 물론 그것도 간호사의 업무 중 하나이며 특히 중환자실에선 매우 중요하지만, '굳이 저런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싶은 세부적인 정보까지 서류 작업을 해야 해서 쓸데없는 일로 차지 본연의 업무를 방해받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차지를 보는 당사자들도 그 서류 작업 때문에 스트레스받아했던 것 같다.

 부서에서 3년만 채우고 그만 뒀기 때문에 다행히 차지는 피해 갔고, 엔클렉스를 보고 이직했던 곳은 작은 척관절병원의 마취과 포지션이라 차지 개념이 없었다. 스크럽들 사이에선 차지가 있었지만 그들은 마취과엔 개입하지 않았고 나도 스크럽들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차지를 볼 수 없었다.

2. 리더십 경험

 최근 CRNA스쿨을 찾아보며 차지 경력이나 위원회 경험이 leadership 역량을 증명하는 중요한 스펙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언젠가 차지는 하긴 해야겠구나' 생각했었다. 미국 병원에선 차지 트레이닝이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뭐 한 3~4년 차부터 시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같은 날 입사했던 동기 두 명은 이미 차지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그들을 보면서도 차지는 아직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보면 멍청하다. 트레이닝을 받기 전 까진 몰랐는데 부서에서 다루는 장비들에 대한 교육을 전부 다 이수하면 자동으로 차지 자격요건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현재 일하는 부서에서 보는 장비는(벤트 제외) 굳이 다 따지자면 7~8개 정도이고 자주 보는 기계는 CRRT, ECMO, LVAD, Impella, IABP 이렇게 다섯 개다. 블로그 내 다른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장비에 대해 정리해 놓은 글들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교육을 듣고 난 뒤 리뷰 목적으로 게시한 것이기도 하다. 장비들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고 증명서를 CRN(Clinical Resource Nurse)에게 제출하면 장부에 업데이트가 되어 누가 어떤 디바이스 달린 환자를 보는 것이 가능한지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 난 벌룬펌프 교육을 들음으로써 부서 내 주요 장비 5종에 대한 교육을 마무리했고, 윗선에서 득달같이 날 차지 트레이닝에 꽃아 넣은 것이었다. 

3. 차지트레이닝

 일단 트레이닝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첫날부터 최소한의 지침만 주어진 채 거의 방치된 상태로 백업만 받은 것 같았다. 두번째 날은 내가 메인차지, 프리셉터가 서브차지가 되어 역시 최소한의 도움만 받았다. 오히려 마지막 날이 코차지와 함께 50대 50으로 업무 분담을 해서 편했던 것 같다. 그렇다, 차지 트레이닝(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은 3일이 끝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이미 차지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어떻게 이런 걸 하냐고 물어보니 나는 감정기복이 없는 편이라서 잘할 것이라고 독려해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격려하고자 으레 하는 소리 같았다. 

4. 한국과 차지 업무 비교, 대조

[1] 질지표관리는 CRN몫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긴 resource nurse가 있기 때문에 차지가 질지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그저 베드를 어레인지 하고 바쁜 간호사들을 도와주고 어싸인을 내면 된다. 차지가 목소리를 내어 욕창관리나 감염관리를 강조할 순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매주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가는 밤에 Sacrum과 Heel 사진을 찍어 올리는데, 보통 'butt pic day'라고 채팅방에 한번 강조정도 해준다. 

[2] Break Coverage

 한국에선 식사시간에 부재중인 간호사 뒤를 봐줄 누군가를 딱히 지정하진 않고 그냥 주변에서 다같이 봐줬다면, 현재 일하는 병원에선 간호사들끼리 브레이크 타임을 나눠서 서로 지정한다. 따라서 누군가 쉬러 가면 파트너가 그 환자를 커버해 주는데 그 브레이크 커버리지를 짜는 것이 차지 일이다. 어느 정도 중증도의 환자들은 액팅끼리 서로 커버가 가능하지만 장비가 두 개 이상 달린 헤비 한 환자들은 액팅 간호사들끼리 서로 커버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차지가 직접 커버해줘야 한다. 요샌 부서 중증도가 매우 높아서 장비를 두 개 이상 달고 있는 환자들이 대여섯 명씩 되는데(ECMO+CRRT+Impella, ECMO+IABP, BIVAD 등) 차지 혼자 커버하기가 벅차서 두 명이 co-charge를 보고 CRN까지 가세해서 브레이크를 커버해주고 있다.

[3] PCT assignment

 한국에 있을 땐 부서크기가 크지 않기도 했고 조무원 어싸인 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선 나이트 차지는 밤 11시에 출근하는 PCT(업무원 내지는 조무원 포지션)들 어싸인을 내줘야 한다. 어싸인은 CO 혹은 Floor로 구분된다. Floor는 말 그대로 플로어에 상주하며 환자 콜벨에 응답하거나 position change, bathing, 혹은 lab hand delivery(검체 중 간혹 기송관으로 못 보내고 직접 전달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를 수행한다. CO는 Constant Observation의 줄임말로, 탈관위험이 있는 환자들을 안전사고가 나지 않게 감시하는 역할이다. 환자 베드 옆에 앉아서 일하는 내내 환자 곁에 있는 어싸인이다. 한국에서 일할 땐 바로 억제대를 적용했지만 현재 병원에선 억제대를 적용하면 규정상 계속 오더를 수정받아야 하며 차팅도 꽤나 번거로워지기 때문에 신경과 환자들이 아닌 이상 억제대를 적용하지 않는다.

 PCT들은 한시간 휴식시간을 가지며 PCT끼리 브레이크를 커버해 주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커버해 줄 지도 어싸인 노트에 표시해야 한다. 보통 floor상주 PCT가 CO로 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커버해 준다. PCT는 그 수가 부족할 때가 자주 있어서, 브레이크를 커버해 줄 여유인력이 없다면 Nursing admin에 어필해서 브레이크 커버용 플로팅 PCT를 받아야 한다. 

[4] 다음 듀티 Assignment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장 어렵고 골치아픈 차지업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선 환자가 간호사를 해고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환자가 특정 간호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간호사가 특정 환자를 거부할 때도 있어서 차지 핸드폰으로 어싸인을 바꿔달라고 문자까지 보내는 간호사들이 있다. 또한 불안 증세가 심한 환자들이 꽤 많은 편인데 간호사 성격까지 고려해서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이 해당 환자를 보게끔 어싸인을 내는 것도 트레이닝 때 봤다. 보통의 경험이 아니고서는 어싸인을 잘 내기 힘들어 보이는데 이걸 겨우 여기서 1년 반 일한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러웠다.

 위에서 언급했던 device competency를 고려해서 어싸인을 내야 하는 것이 한국과 차이가 있는데, 우리 부서는 연차가 어느 정도 찬 간호사들은 전부 대학원으로 빠지고 그 자리를 신규가 메꾸고 있어 디바이스 교육여부 양극화가 심한 상태다. 

4. 타임라인

[1] 7~8PM

 인수인계로 시작한다. 현재 토탈 환자 수와 그중 ICU level환자 및 Acute 환자가 몇 명인지(우리 병원은 스텝다운 유닛이 없어 Acute환자도 ICU에 섞여있다), 간호사와 PCT는 몇 명인지, 빈베드와 입원 예정인 환자 유무에 대한 인계를 주고 나서 환자 인계를 준다. 여느 차지 인계가 그렇듯 환자 인계는 간단하게 입원동기, 최근 48시간 내의 변화, future plan, device여부, CO여부 정도만 주고받는다.

 인계가 끝나면 그날 출근한 간호사들과 PCT들을 위한 메신저 채팅방을 만든다. 그 듀티 동안 의사소통을 위한 단톡방을 만들고 채팅방애 Secondary Nurse를 꼭 지정할 것을 강조한다(프로젝트의 일환인지 원내 규정인지 이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 작업도 끝나면 라운딩을 돈다. 가끔 차지끼리의 인수인계 중에도 놓치는 정보가 있거나 차지 인수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라운딩 때 본인이 받았던 인계와 환자 상태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체크하기도 한다. 

[2] 8~9PM

 바쁘지 않다면 8시면 라운딩이 끝나고, 만약 신환이 왔다면 그걸 정리해주느라 라운딩 시간이 더 늦어질 텐데, 어쨌든 라운딩이 끝나고 나면  저녁 9시에 있을 PCT huddle을 준비해야 한다. 간호사와 달리 PCT는 3교대라 밤 11시에 나이트 PCT들이 출근하므로 2시간 전인 9시에 Nursing administration부서와 원내 모든 부서 간의 음성 미팅을 통해 인력을 조율하는 시간을 가진다. 모든 부서들이 공유하는 스프레드 시트에 출근 예정인 PCT 인원수, Sick call을 쓴 PCT인원수, 부서 내 CO 환자 수를 채워 넣어 PCT가 부족한지 남는지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리퀘스트 칸에 인력을 보충해 달라고 기재해야 한다. 

[3] 9PM~11PM

 나이트 CRN이 보통 이시간쯤 출근하므로 인계를 한번 더 줘야 한다. 그 뒤 부서가 아주아주 한가하다면 이때부터 데이 어싸인을 내도 좋고 그냥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게 없는지 형식적인 질문을 던져도 좋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물고 보통 이 시간대에 환자들이 많이 입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도와주게 될 것이다. 환자가 처음 오면 담당 team member(NP or PA)들과 SICU attending을 전화로 불러 환자 상태 파악 혹은 수술 파트로부터 인계를 받게끔 해야 한다. 그래서 전화를 할 일이 많은데, 전화를 거는 것뿐만 아니라 평소에 차지에게 전화가 많이 걸려오므로 전화가 밀려서 다 응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11시에 출근하는 PCT들을 위해 어싸인을 내준다. 그리고 보통 열두시가 되면서부터 슬슬 브레이크를 가기 시작하므로 누가 누구를 커버해 줄지에 대한 어싸인도 내줘야 한다. 서로 가지고 있는 Device Competency가 다르므로 이를 고려해 해당 Device를 볼 줄 아는 간호사가 커버해 주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우리 유닛은 34 베드에 스테이션이 네 개로 갈라져있고 전부 1인실에 병실 안에서 다른 병실을 볼 수 없어서 물리적으로 쉽지가 않다. 그래서 보통 같은 pod에 있는 간호사들끼리(인접한 간호사들끼리) 커버하게 한다. 

 나이트 차지 한정 업무로 다음날 OR수술스케줄을 정리하는 것이 있다. 다음날 수술 일정을(보통 컨시어지에서 출력해준다) 검토하고 우리 부서로 입원할 것 같은 환자들을 추려서 어싸인을 낼 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정규 수술 이외에 이식수술 같은 경우 차지 핸드폰의 이메일로 가끔 알림이 오는데 이 또한 확인해서 다음날 어싸인에 반영해야 한다. 

[4] 11PM~12AM

 이 시간대쯤엔 부서 내 모든 구역이 잠잠해지는데 간혹 이때까지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구역이 있다. 때에 따라선 어싸인을 바꿔서 고통받는 액팅 간호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5] 12AM~5AM

 이 시간 동안은 브레이크를 커버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나이트 휴식시간은 1시간 반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커버해줘야 하는 간호사들끼리 합의를 봐서 1시간만 쉬던가 차지가 쉬는 시간을 포기해야한다. 차지도 물론 쉬어야 하고 제시간에 휴식해야 하는 것이 강조되지만 요즘같이 중증도가 높을 땐 쉽지가 않다. 

 대략 네시 반 정도엔 브레이크 커버를 끝내고 5시에 있을 두번째 허들을 준비해야 한다. 데이시프트 출근 두 시간 전으로, 콜아웃을 할 때 출근 두 시간 전까지만 요청받는 게 허들 시간 때문인 듯하다. 이번엔 데이 간호사들과 데이 PCT허들을 동시에 진행한다. ICU환자수와 Acute환자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그날 간호사가 몇 명 필요한지 수식에 의해 계산되고, 이를 실제 출근 예정인 간호사 수와 비교해 본다. 아까 PCT때와 마찬가지로 간호사가 너무 적다면 플로팅 간호사를 요청해야 하고 반대로 간호사가 sensus에 비해 너무 많다면 다른 유닛으로 플로팅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PCT허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은 부서 내 중증도(장비 달린 환자 현황 혹은 입원예정 환자)를 기재하게 되어있는데, 중증도가 너무 높다면 간호사 수가 오버되어도 다른 부서로 플로팅 보내지 않는 듯하다. 우리 부서 매니저는 간호사 수가 딱 sensus에 맞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만약 간호사 수가 넘친다면 플로팅을 보내거나 응급오프를 주는 쪽으로 하고 있다. 

[6] 5~7AM

 허들이 끝나고 나면 밤사이 있었던 일을 환자별로 업데이트를 받는다. 채팅방에 올려서 받을 수도 있고 직접 돌아다니며 업데이트를 받을 수도 있는데, 차지끼리 공유하는 스프레드 시트에 정리한뒤 출력해서 인계 때 배포해줘야 한다. 이때부터 어싸인도 내기 시작하므로 꽤 바쁜 시간대인데, 요즘같이 device 달린 환자는 많고 device competency가 별로 없는(신규 같은) 간호사들이 많을 땐 정말로 골치 아프다. 개인적으로 어싸인 내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다. 

[7] 7AM~

 데이 차지와 데이 CRN, 데이 매니저와 나이트 CRN이 한자리에 모여 인계를 주고받는다. 나이트 CRN이 퇴근을 아침 8시에 하기 때문에 별일 없으면 보통 CRN이 인계를 준다. 

어싸인
어싸인과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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