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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간호사/취업 수속

널싱홈 썰(3)

0. 시작하기에 앞서(긴 글 주의!)

 이전 글을 보려면 밑을 참고하자. 이번 글에서 풀 썰은 전부 입사한 지 2주 이내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본 글은 널싱홈에서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지 그와 관련된 에이전시와의 계약을 파기하게 끔 종용하거나 권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파기를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행여나 이를 감행했다면 법적, 금전적 책임은 반드시 본인이 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파기하는 과정에 대해선 일절 공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3.08.09 - [미국간호사/취업 수속] - 널싱홈 썰(1)

 

널싱홈 썰(1)

0. 랜딩 직후 널싱홈에 입사하기까지 랜딩 하기 전 이미 에이전시에서 내 랜딩 날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랜딩 후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고 서류가 완료되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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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 [미국간호사/취업 수속] - 널싱홈 썰(2)

 

널싱홈 썰(2)

0. 시작하기에 앞서 랜딩 직후부터 널싱홈 오리엔테이션 까지가 궁금하다면..? 이전 글을 보고 오자. 2023.08.09 - [미국간호사/취업 수속] - 널싱홈 썰(1) 널싱홈 썰(1) 0. 랜딩 직후 널싱홈에 입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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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싸인 노트가 무용지물

 2일 간의 버디업이 끝나고 정말 독립해서 혼자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내가 일했던 시설은 매 출근 전 널싱오피스 앞의 게시판을 확인해야 하는 데 여기에 각 부서에 오늘 누가 일하는 지 쓰여있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일하는 부서가 매번 바뀔 수 있고 타 부서 사정 따라 헬퍼를 가거나 혼자 일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물론 저 당시에는 그런 걸 눈치 못 챘다. 게시판을 확인했을 땐 나와 다른 LPN 한 명이 같이 일한다고 되어있었는데, 막상 출근하니 7시 반이 넘도록 LPN이 나타나지 않았다. 급한대로 오전 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8시쯤 오피스에서 전화가 왔다. 출근했어야 할 LPN은 타 부서로 헬퍼를 갔고 우리 부서엔 곧 다른 헬퍼가 올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어차피 전화로 통보해서 어싸인이 실시간으로 바뀔 거면 왜 아침마다 게시판을 확인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어쨌든 타 부서 헬퍼가 와서 차지를 봐줬다. 헬퍼가 차지를 본다는 것도 웃기지만 병동별로 업무에 차이가 없어서 가능한가 싶었다. 난 신규라 그나마 액팅이 익숙해서 마저 약을 돌렸다. 하지만 헬퍼는 7시부터 3시까지만 근무라 오후 3시부터 나이트가 출근할 7시 이후까진 나 혼자 모든 걸 해야 했다. 기억상 저 날이 아마 독립 2일 차였을 텐데 당시 차지 업무를 배웠다고 치더라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고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르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았던가, 혼자 남겨진 네 시간 동안 내가 제대로 차팅을 끝낸 건지, 빠뜨린 일은 없었는지 감이 1도 없었다. 중간중간 매니저가 와서 도와줄 건 없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내가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녀도 자기 일에 치여 바빠 보였기에 따로 얘기하지 않았다. 나이트 간호사가 와서 인계를 줄 때도 특별히 바뀐 게 없다는 얘기밖엔 할 게 없었고 이게 제대로 된 인계인지도 몰랐다.  

2. 이상한 인력분배

 또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싸인 상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는데 call off를 냈는지 부서에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조졌네' 생각하곤 혼자 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널싱 오피스에서 census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내가 00이 부서에 없다고 말하자 잠시 대기하라더니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른 층(편의상 A층이라 하겠다)으로 가서 그 층 차지와 함께 둘이 일하라 했다. 독립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아예 모르는 플로어에 가서 약을 주라니.. 이게 맞나 싶었다. A층엔 그날 B와 C 두 명의 간호사가 있었는데, 그중 B를 나와 트레이드해서 B가(1년 정도 일했다고 했다) 우리 유닛에서 액팅+차지로 일하고 나를 A층에서 액팅 시키고 C는 날 도와 차지를 보게 하는 계획이었다. B는 우리 유닛에 와본 적이 없어서 환자들이 생소했을 것인데 널싱오피스가 생각이 있는 건가 싶었다. 차라리 날 내 유닛에 킵하고 B나 C 중 한 명을 우리 부서로 끌어와서 차지를 보게 하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내가 환자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으니).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인력분배가 된 이유는 nursing liason이 우리 층에서 일하기 싫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nursing liason은 간호사의 업무로딩을 덜어주기 위해 드레싱이나 간단한 일을 도와주는 인력인데, 알고 보니 간호사도 아니란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나, B 그리고 C가 토론을 거친 뒤 B가 nursing liason을 설득(...)했고, 이 얘기를 널싱 오피스에 다시 했다. 또 한참이 지나더니 그럼 그렇게 하라고 답변이 왔다. 이 때문에 인계를 받고 거의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일을 하나도 시작하지 못했다. 최종적으론 우리 유닛에서 내가 액팅, B가 차지를 보고 A유닛에선 C혼자 액팅+차지를 보며 nursing liason과 같이 일했다. '여긴 진짜 너무 근본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분명히 출근할 때 사원증을 기계에 찍는데 직원들 근태 내역을 널싱오피스에서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한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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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말 홀로 남겨진 나

 이번엔 헬퍼도, 타 부서 플로팅도 없이 정말로 혼자 일하게 되었다. 액팅일이 어느 정도 익었다 치더라도 차지일과 같이 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만 부서에 없는 환자들, 어디선가 입원한 신환, 음식이 다 식어있다느니 부탁한 음식이 없다느니 컴플레인하는 환자들, 본인 업무도 하기 싫어하는 조무원들과 수백 개의 약,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힌 기록까지 모든 게 총체적 난국이었다. 매니저가 수시로 올라와서 괜찮냐고 물어보고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만 그런 그도 너무나 바빠 보였다. 들어보니 간호사 일 한지 1년도 안되었단다.... 5년 된 내가 볼 땐 미안하지만 이 사람한텐 바랄 게 없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뭔가 부탁하면 즉각적으로 조치가 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움 요청 없이 혼자 일하다 틀릴 경우 왜 물어보지 않았냐며 내가 다 뒤집어쓸 것 같았다(내가 수행하고 기록엔 내 이름이 남으니까).

 문득 면접 중 '일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나는 환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던 게 떠올랐다. 이 시설에서 환자 안전 따위는 없었다. 일이 익숙해지면 당연히 문제없이 해내겠지만 일이 익숙해지기까지 어떠한 서포트 시스템도 없었다. 오티는 극도로 짧고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부족분에 대한 보상책도 없었다. 마치 사자가 자기 새끼를 절벽아래로 던져버리듯 '알아서 해내겠지', '모르면 물어봐라(물어보기 전까진 절대 안 도와줌)' 같은 마인드가 팽배했다. 하지만 난 사자새끼가 아니었고, 이런 곳에서 내 라이센스에 위협을 받아가며 일하고 싶진 않았다.

 환자 안전이 중요하단 것에 동의했던 간호부장+의미 없이 뛰어다니는 매니저들+프로 의식 없이 근태가 개판인 다른 간호사들(실제로 제시간에 출근하는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일 하기 너무 싫어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조무원들+힘들다고 말 헀으면 오티 기간을 늘리던가 다른 서포트를 해줬을 거라며(니가 보기엔 그게 가능해보이니?) 입바른 소리만 하던 에이전시 매니저까지 전부 신뢰할 수 없었다. 어쩌면 환자 안전을 보장하며 일할 환경을 제공하겠다던 약속을 먼저 깬 것은 병원 측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이상 출근을 안 하기로 결심했고, 에이전시 매니저에게 파기를 통보했다.  

4. 썰을 마치며

 뉴욕 시티에 온 이상 처음에 병원에 바로 취직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널싱홈이나 스쿨널스를 반드시 거치게 된다. 시설마다 업무강도는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선생님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기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널싱홈 퇴사 후 병원에 입사해서 적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 생각하면 널싱홈은 시스템과 인력 자체가 너무 열악하고, 언어나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고충과는 아예 별개다. 저런 시설에서 일하며 계약기간을 다 채웠던 선배 간호사들이 그저 존경스러웠다. 그렇기에 앞으로 뉴욕에 랜딩 해서 이런 에이전시와 연계된 시설을 거칠 선생님들은 절대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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